최원석 기업인 프로필 나이 고향 인터뷰 영상 및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세 소식

최원석 기업인 프로필 나이 고향 인터뷰 영상 및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세 소식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향년 80세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이에 그의 별세 소식을 살펴보고 최원석 회장의 나이 고향 최근 인터뷰 영상 등의 프로필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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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기업인 프로필 나이 고향 인터뷰 영상 및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세 소식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세 

 

최원석 회장 별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0세였습니다. 최원석 회장은 최준문 창업주의 아들로,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주하며 동아그룹을 22개의 계열사를 갖는 재계 10위권의 대기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고인은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66년, 그의 23세 때 동아콘크리트의 사장으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후에는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을 거쳐 동아그룹의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40대 때에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그룹을 키웠으나,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7년 IMF 외환위기, 그리고 김포 간척사업의 실패 등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결국 1998년에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2001년에는 동아그룹이 최종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분식회계와 배임, 불법 사기 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2008년에는 특별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이후로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사업과는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다 지난 6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시한부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동아그룹의 해체와 관련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한편 최원석 전 회장은 배우 김혜정, 가수 배인순, 아나운서 장은영과의 결혼 및 이혼으로도 많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인이었던 장은영 전 아나운서와는 1999년에 결혼하였으나 2010년에 이혼하였습니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씨를 비롯하여 4남 2녀가 있습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되어 있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7시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원석 회장최원석 회장최원석 회장
최원석 회장

 

 

최원석 기업인 프로필 나이 고향 인터뷰 영상

 

최원석 프로필

최원석 전 회장은 1943년 4월 24일에 대전광역시 출생이며 2023년 10월 25일 향년 80세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으며 학력은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그리고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최원석은 동아건설의 창업주, 최준문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교육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 후에는 동아건설 및 대한통운의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을 역임하며, 마지막으로 동아그룹의 회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1981년에는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으로 서울 중구 2선거구에서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특이한 사건 중 하나로는 젊은 시절 민투위 강도 사건에 피해를 입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1985년 9월에는 방남한 허담과의 극비리 회담이 그가 소유한 가평 별장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업계에서 그의 활약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특히, 20세기의 대역사로 불리우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고 지휘하여 동아건설을 세계적인 건설사로 성장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다피와의 깊은 우정도 이야기되는데, 그는 카다피를 친근하게 '카선생'이라고 불렀고, 반대로 카다피는 그를 '헤잔님'(회장님)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영에서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7년의 외환 위기 등으로 인해 경영권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는 성수대교 사고는 있었지만, 1기 신도시의 성공과 김포 간척지 개발사업에 투자하며 동아건설의 재정상태가 좋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본인의 주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여러 외부 요인과 결정들로 인해 그의 기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그의 동생으로는 최원영이 있으며, 그는 전 국제언론문화사(현 시사저널사)의 회장이자 예음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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