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야구 경력 근황 | 임창용 8천만원 사기 혐의 기소 이유
전직 프로야구 선수 레전드 임창용이 지인에게 8000만원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임창용 8천만원 사기 혐의 기소 이유와 배경을 살펴보고 임창용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야구선수 경력 근황 등의 프로필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창용 8천만원 사기 혐의 기소 이유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은 지난 1월 24일 임창용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임창용씨는 2019년 필리핀에서 지인 A씨에게 "8000만원을 빌려주면 3일 후에 아내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갚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임씨가 A씨에게 빌린 돈을 '바카라' 도박 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며, 처음부터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A씨는 임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지만, 임씨는 "갚겠다"고 말한 후에도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임씨가 사기 혐의로 기소된 배경입니다.
또한, 임씨는 2021년에도 지인에게 2500만원을 빌린 후 1500만원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습니다.
임창용씨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형사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2014년에는 마카오에서 4000만원대의 바카라 도박을 한 혐의로 1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 7월에는 상습도박(바카라)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임창용씨는 야구계에서도 큰 명성을 얻은 선수입니다.
지난해 KBO(한국프로야구)가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에 포함되었으며, KBO 리그에서 통산 760경기에 등판해 130승 86패, 258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3.45의 성적을 남겼습니다.
KBO 리그의 해태와 삼성에서 13시즌을 뛰며 국내 팬들에게 사랑받았고, 2008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진출해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야쿠르트에서의 첫 시즌부터 팀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며 5년간 128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에는 팔꿈치 수술 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로 진출해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했으며, 2014년 삼성으로 복귀한 후 KIA에서도 3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습니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임씨의 최근 사기 혐의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임창용 나이 고향
임창용 선수는 1976년 6월 4일에 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 출생으로 본관은 나주 임씨입니다.
그의 신체 조건은 182cm에 82kg, 혈액형은 O형이며 병역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에서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 복무하였습니다.
임창용 학력 경력
임창용 학력은 광주대성초등학교, 광주진흥중학교,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임창용 선수는 1995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카고 컵스에서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활약하며 세이브 기록으로 성구회에 가입한 최초의 투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1996년 한국시리즈를 시작으로 2017년 한국시리즈까지 엔트리에 올라 20대, 30대, 40대에 모두 우승을 차지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창용 선수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창드', '창용불패', '애니콜'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 투수 중 24년 연속으로 1군 리그에서 투구한 유일한 선수입니다.
임창용 선수는 구대성과 함께 불패라는 수식어를 가진 투수이며,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40대 초반까지 강속구를 던지며 프로에서 살아남아 한국 야구계의 역대급 투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100이닝 이상을 소화했으며, 마무리 투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97년 이후 꾸준히 세이브 순위에 들어왔습니다.
오승환 등장 전까지 KBO 최연소로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으며, 1998년에는 1점대 평균자책점(ERA)을 기록했고, 1999년에는 풀타임 마무리로 ERA 1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대단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생활 면에서는 여러 논란과 구설수가 있었으며,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등으로 큰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은퇴 후에도 세금 체납 및 상습 도박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통산 WAR(승리 기여도) 54.7로 투수 중 7위를 기록하며 KBO 40주년 프로야구 레전드 40에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삼성과 KIA에서 모두 방출되면서 은퇴식도 갖지 못한 채 은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