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프로필 나이 콘서트 근황 및 나훈아별세 악성루머
1. 나훈아별세 악성루머
최근 가수 나훈아(76)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유튜브발 가짜뉴스 악성루머가 유포되고 있어 논란입니다. 현재 유튜브에 나훈아라고만 검색을 해도 그가 교통사고로 입원 이틀 만에 병원에서 공식 별세했다’, ‘가수 나훈아가 76세 나이로 병원에서 사망하기 전 막대한 재산을 공개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와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트로트의 거장, 나훈아 별세…장윤정과 조영수, 깊은 애도 표현’ 등 황당한 이야기를 쏟아 내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면 몇몇 유튜브는 ‘나훈아 사망 가짜 뉴스입니다’라고 확산을 차단하는 영상을 게제하는 등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훈아 별세 사망에 관련한 어떠한 근거도 없는 짜집기 악성루머 영상으로 누리꾼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을 넘었다”며 “가짜뉴스를 퍼트려 혼란을 야기하고 피해를 주는 악성 유튜버들은 고소해 처벌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 나훈아 나이 콘서트 프로필
나훈아 프로필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로 본관은 경주 최씨입니다. 그는 1947년 2월 11일 부산 동구 출생으로 올해 나이가 77세입니다. 키는 175cm, 몸무게는 71kg, 혈액형은 B형이며 학력은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 대동중학교,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병역은 공군 병장 만기전역하였습니다.
나훈아는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 그는 자신의 시대를 라이벌인 남진과 함께 주도했습니다. 그는 히트곡 120곡이 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며, 앨범 발표수는 200장 이상에 이르며, 그중 800곡 이상은 자작곡입니다. 또한 총 2,600곡 정도의 노래를 자랑합니다. 이런 성과로 그는 트로트의 황제, 가황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나훈아의 독특한 창법은 그의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을 활용하며, 그의 특징적인 꺾기는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들게 하였으며, 그의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불러내는 것은 큰 부담으로 여겨질만큼 어려운 곡이며 그의 창법은 그만큼 독특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대부분 히트곡은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지만, 다른 사람이 작곡한 히트곡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장난 벽시계", "행운", "남자라 울지 못했다" 등은 나훈아가 작사 작곡하지 않은 곡입니다. 그는 자신의 곡을 다른 가수에게 주는 일이 적지만, 그 중 유명한 것으로는 "땡벌", "당신의 의미", "여자이니까" 등이 있습니다. 그의 음악적 시도는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하는 형태로 이루지곤 했습니다. 나훈아의 가창력 외에도, 그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무대 장악력과 무대 연출능력이 뛰어난데 콘서트에서는 한 팔을 들어 자신이 작사 또는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나타내며, 양 팔을 들면 작사와 작곡을 모두 한 노래를 부른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훈아 이모저모
1. 나훈아는 어린 시절부터 체력, 폐활량, 근력이 뛰어나, 힘 있는 저음 처리로 많은 음악팬들을 매료시켰다.
2. 그는 공연료만으로 소득을 올리는 세 명의 가수 중 하나로, 나머지 두 명은 조용필과 서태지다. 이 세 사람은 음악 활동 외에는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한다.
3. 삼성 일가가 개인 파티에 나훈아를 초대해 공연하자 거부한 유일한 연예인이다. 그는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고,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티켓을 사라고 했다.
4. 그는 '스타는 하늘의 별처럼 신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인데, 가수의 뒷무대를 보여주면 환상이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5. 그는 '슈퍼스타는 30%의 안티팬이 필요하다'라는 발언도 했다. 이 발언은 나중에 '진정한 슈퍼스타는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미치게 한다'로 재해석되어 인기를 끌었다.
6. 나훈아는 일반인뿐 아니라 동료 연예인들도 실물을 보기 어려운 연예인 중 하나다. 데뷔 30년 차인 유재석조차 실제로 나훈아를 본 적이 없다.
7. 그는 노래방에서 가장 많은 곡을 부른 가수로, 2위는 쿨이다. 이 덕분에 매월 5,000만 ~ 1억원의 저작권료를 받는다.
8. 1970년대에는 수려한 외모의 남진과 비교됐으나, 지금은 푸근한 아저씨상의 남진과 비교되며 카리스마 있는 미중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 1992년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자유당에서 공천을 제안받았지만, 가수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겠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10. 1996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공연을 하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부르며 대한민국의 주장을 확실히 표현했다.
11. 1998년에 미국에서 공연을 제안받았을 때, 미국 에이전시가 나훈아가 요구한 모든 조건을 받아들여 공연을 할 수 있었다.
12. 2017년 8월에는 사촌지간인 나진기가 나훈아의 어릴 적 비하인드를 공유했다.
13. 2017년 11월에는 "나훈아 Dream 콘서트"를 서울, 대구, 부산에서 개최했으며, 이를 위해 온라인으로 티켓 판매 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콘서트는 곧바로 매진되었다.
14. 2018년, 나훈아는 앙코르 공연과 전국 순회 공연을 추진하였고, 공연의 티켓은 초고속 매진되었다.
15. 2019년에도 전국 투어 콘서트 일정이 잡혔으며, 이 역시 초고속 매진되었다.
16. 나훈아가 강진에게 제공한 노래 '땡벌'이 강진의 히트곡이 되었다. 나훈아는 이 곡을 강진에게 주면서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17. 2020년, TV CHOSUN에서 방영된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나훈아의 곡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18. 나훈아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에 익명으로 3억 원을 기부하였다.
19. 2020년 9월에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추석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20. 그의 노래는 많은 후배 가수들이 존경심을 담아 불러주지만, 그는 그들 앞에 나온 적이 없다.
21. 2021년에는 북한의 10대 소년들이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2. 하와이에는 나훈아를 뜻하는 'Nahuna'라는 작은 섬이 있다.
23. 나훈아는 트로트 돌풍 중일 때 심사위원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콘서트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였다.
24. 그는 최신 유행어에 은근히 밝은 편으로, 직접 작사한 곡들에 '너와의 썸', '웃프다'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25.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퇴치 기원 콘서트와 맞짱의 뮤비연출로 인해 코리안 게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